검색결과 리스트
글
[Sebastian Moran](세바스찬모런)_짤막한 저격수 이야기
Richard Brook.
남자는 잠시 검은 돌 위에 이탤릭 글씨체로 멋드러지게 패인 이름을 한 동안 바라보았다. 입술에 물은 담배가 유난히 뜨거웠다. 보이지 않는 목구멍의 담배 연기가 자신의 두 폐를 가득 잠식하는 것을, 남자는 잠시 동안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하게 흘러갔다. 연기가 폐의 구멍으로 속속들이 스민 순간, 남자는 슬며시 눈을 떴다. 런던에선 흔치 않은 화창한 햇빛이 자신의 눈꺼풀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빼앗아 가는 것은 거리에서 영감과, 예술을 빼앗아가는 것이라고 했었다.
남자는 잠시 웃었다. 그것은 그가 별나서가 아니라, 그 말이 지나치게 잘 어울려서였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강하게 휘두르는 것보다 유연하게 휘는 것이 강하다는 것을 아는 남자였고 공존하는 것의 무서움을 잘 아는 사업가였다. 그는 그 어느 개 같은 성격의 소유자라도 자신의 앞에 무릎 꿇리는 능력이 있는 수완가였다. 그는 강인했다. 그는 절대적이었다. 그는 절대자였다.
그러나 그가 있는 곳은 그저 이 허름한 가짜 이름 아래의 땅 속 깊숙한 곳이다. 한 가지 정당한 것은 공격자이다. 그는 자살했다.
남자는 피우다 만 꽁초를 묘비명 위에 올려두었다. 햇빛 위에서 타 들어가는 담배 꽁초는 마치 그 상태로 영원히 연기를 피울 것만 같았다. 남자는 발걸음을 돌려 사라져갔다. 녹음이 우거진 어둠 사이로 남자는 점점 더 멀어졌다.
남자는 가방을 메고 있다. 남자는 방금 전 그만의 장례를 끝냈다. 그리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지는 못했다. 그는 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아닌 사람들의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부모와, 친지와 여러 비즈니스 사업가들을 모셨지만 정작 기뻐할 일은 아닐 터였다. 오직 그만이, 진정한 동료였다. 아니면 그는 ‘개’였다. 그는 그렇게 불리곤 했었다. 일을 잘 하는. 키 크고 기민하며 말 수 없어 충실한 개. 그는 그런 존재였다. 달리 보자면 용병보다도 못한 존재였지만 어쨌거나 그만의 약속은 지켰다.
죽음의 곁에 있겠다는.
케로베로스가 떠오른다. 남자는 작게 미소 지었다. 지옥의 개가 되는 것도 그와 썩 잘 어울렸다. 어찌 되었든 남자는 그 장소에 오래 있지 못했다. 언제나 그의 주인이 함께 일하던 방식대로, 그는 머물 수 없는 장소에 자주 있었고 대부분 그러한 장소는 그가 생사를 겪는 평소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어느 곳에든 오래도록 머물 수 없다. 그는 그가 하는 일에 달려 있다. 요컨대 그의 가방 안에 소형 라이플과 브라우닝 L9A1이 있다는 사실과도 상충된다.
남자는 자신의 주인을 잃은 것과는 별개로 침착하게 녹음 사이를 걸어나갔다.
라이플과 브라우닝은 각기 따로 쓸 일이 있다. 물론 저격수는 한 타겟 당 하나의 탄환만을 허용한다. 빗맞은 경우란 있을 수 없다. 가장 악랄한 거미의 손아귀에 걸려들었다면 그 정도의 수완은 있어야 한다. 혹은, 잡히지 않는다. 존재하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하는 저격만큼 두려운 것이 있을까? 그는 수많은 시간 동안 죽음을 전하는 사신이었다. 저격 당하는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그의 얼굴도 모른다.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그의 탄환이다. 그것도 매번 종류가 다르게 넘어가는 탄환이기에 누가 쏜 것인지 짐작도 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의 주인이 지니고 있는 수완과도 연결된다. 그는 이제 능숙했고, 숨을 쉬는 것처럼 자유로웠으며 지금은 더욱이 그러했다. 사심이란 있지도 않던 그가 감정을 끄집어내어 일을 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앞서 설명하였듯이 숨쉬듯 자유롭다.
남자는 익숙하게 묘지를 지나 공원에서 벗어났다. 남자의 가방에는 오직 그 뿐이다. 아니면 남자는 저격을 할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보조 장비가 없다. 단지 라이플과 권총 뿐이다. 하나의 권총은 그가 높은 수익을 받으며 일을 하기 전까지 있었던 곳에서 배급된 것이다. 사실 그가 다듬어진 곳은 바로 그곳이다. 그는 아프간에 참전하면서 달라졌다. 전쟁에의 참상이 그에게 있어 달콤한 마약이 될 때까지, 그는 벗어나는 법을 몰랐고 전쟁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사방에서 쏘아대는 탄환에 무슨 전쟁에의 생각이 있을 것인가. 그는 매번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람이란 간사해서, 도시로 돌아온 상이군인인 그가 안주할 곳은 없었다. 전쟁이란 것은 오로지 철모를 뒤집어 쓰고 총을 겨누거나 탄환을 쏘아대어야지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간에 전쟁이란 없을 수 없는 절대적 요소이자 어찌 보자면 승리나 전략을 위한 도구였다. 사람은 전쟁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몇 번의 잔인한 꿈과 의지할 누군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그가 이미 앞에 있었다.
Baker Street
남자는 잠시 멈춰서 글자를 바라보았다. 사실 남자는 처음이다. 그는 바트솔로뮤에 저격을 하러 간 적은 있어도 베이커가에 가본 기억은 없다. 베이커가는 짐짓 보기에는 평화롭고 별 볼일 없는 런던의 구석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에게는 긴장되기 충분했다. 그에게는 할 일이 있다. 그리고 그가 이번 일에 사심을 집어넣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자유의지’이다. 그는 지금 스스로 이 일을 하려 한다.
누군가에게 기한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부탁 받은 것도 아닌, 그는 자신을 위해 이 일을 한다. 물론 일을 처리할 것은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 사람이 그만큼 용기 있을 거란 생각은 못했다. 감정 하나 섞이지 않고 총구를 들쳐 메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주인은 이제껏 그래왔듯이 자신이 좋아하게 된 장난감을 잡고 죽을 때까지는 놓아주지 않을 심산이었다. 물론 그는 그 끝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기리라. 그는 난간에 올라설 망정 뛰어내리리라. 그는 결국 그 꼴을 보고 말리라. 그는 결국 두뇌에 큰 상처를 입고, 결국은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리라. 죽어야지만 그를 죽일 수 있는…그는 이 게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뛰어내리는 모습을 총구로 관찰하고 나중에 시신을 수습하는 정도였으니까.
이제껏 수없이 많은 사람을 쏴보았지만 그만큼 넓게 패인 흔적은 처음이었다. 아니, 사실 죽이고 난 시신은 별다르게 살피지 않는다. 뒤처리는 그의 몫이 아니니까.
그건 꽤 힘든 사실이다. 그리고 꽤 슬픈 진실이다. 그는 높은 수입을 잃었다. 그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사실 그렇게 신나지 않았다. 사실 ‘신난다’라는 표현이 무엇인지 그는 잘 몰랐지만 일을 수행할 때 콧노래가 나올 정도는 되었다. 그의 주인이 툭하면 하던 대로, 그는 조금은 그 존재감을 채우려 자신도 모르게 노력하고 있었다.
그가 다다른 곳은 단 하나의 창문이 나 있는 허름한 방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한 러시안 킬러가 거주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 주인은 더 이상 이 방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길거리에서 한 시민을 돕다가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남자는 침착하게 가방을 열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쓸 총은 라이플이다. 소총은 가까운 거리가 아니고서는 그만큼의 효과를 준다는 보장이 없다. 라이플은 원거리에서 – 그러니까 현재 창문이 향하고 있는 반대편의 집에 – 영향을 주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탄환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그것으로 단념하고자 했다. 아니면, 그는 그만큼이라도 일을 치룰 만큼 실력이 좋았다. 그는 잠시 라이플의 상태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소음기를 장착한 후 확인하였다.
라이플을 댄 총구에는 사람이 없다. 그는 대신 총을 설치해 놓는다. 전자동이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비가시적 저격수…그는 이런 수법을 여러 번 써먹은 적이 있다. 특히나 그의 주인이 감시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눈을 대신하는 것은 그런 총구 따위가 아니었다. 저격수는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한 번 발견하면 그보다 더 좋은 타겟은 없다. 총구에 얼굴을 대는 한 보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는 총을 설치해 둔 상태로 자신의 뒷주머니에 브라우닝을 챙겼다.
그리고 남자는 방문을 닫았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남자는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기기를 꺼내 들었다. 열 탐지기나 총구와는 별도로, 이 휴대기기야말로 남자의 눈이 되어 줄 것이다. 남자가 전원을 켜자 나타난 것은 바로 CCTV 화면이다. 타겟이 멀쩡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액정을 바라보며 남자는 더 없이 자신의 계략이 맞아 들어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남자가 할 일은 리모콘을 조금 더 상세히 조절하여 현재의 화면에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주인공을 한 번에 쓰러뜨리는 일이다. 그런 것은 쉬운 일이다.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럽다.
총구가 겨눠지고 방아쇠를 당기는 일만 남았다. 남자는 잠시 긴장했다.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버튼을 눌렀을 뿐이다.
CCTV속의 남자가 아무렇지 않은 듯 쓰러진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아하니 정확히 관자놀이에 맞았다. 탁월했다. 남자는 틀리지 않았다. 그는 액정을 보고는 바로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근거리 사격이다.
남자는 건물을 빠져 나와 맞은편 건물로 향했다. 한 낮에 남자가 별다른 복장상의 특이점 없이 길을 건너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남자가 뒷춤에 찬 브라우닝 L9A1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경쾌하지도 게으르지도 않은 남자의 걸음걸이는 누가 봐도 일상생활의 엑스트라다. 어느 누구도 그를 방금 전 한 사람을 죽인 저격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자가 자연스럽게 221B의 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안에서 나타난 여인은 순간적으로 그를 당황한 눈길로 바라보았으나 특별히 저지하지는 않았다. 남자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주인이 밟았을 카펫을 깐 허름한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자의 뒷춤에 있는 브라우닝이 자꾸만 꿈틀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남자가 가진 것이라곤 지금 그것뿐이다. 사람이 죽었다면 누구라도 놀라서 나올 테지만 정작 그 누구도 방 안의 남자를 확인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남자에게 방문을 알리러 올라간다고 했지만 남자는 저지했다. 그는 그 죽음을 직접 목격해야 했다. 저격수로는 드문 일이다. 아니, 이것은 미친 짓이다. 어느 저격수도 자신의 타겟을 확인하지는 않는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본능을 드러냈다. 그는 그것을 봐야만 할 것 같았다.
그가 문의 손잡이를 여는 순간,
익숙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손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특별히 훈련을 받은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가까이에서 자신 외의 누군가가 저격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그것은 차라리 테러범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앞에 둘 때에나 가능하지, 순간적으로 여자의 총이 자신을 향했을 거란 생각을 해보지만 이미 불가능하다. 상대는 좀 전의 여자보다는 키가 크며, 자신만큼 소리를 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자이다. 그리고 뒤통수가 그리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거리와 크기는 분명 자신이 뒷춤에 차고 있는 브라우닝 L9A1을 연상시킨다. 뒤에 있는 자는 자신과 같이 군대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참전한 자이다.
머리에서 수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리고 그가 문을 벌컥 열며 뒷춤으로 손을 넣으려는 찰나, 드러난 것은 또 다른 한 사람이었다.
그는 방금 전 남자가 저격한 사람이었다.
“세바스찬 모런.” 맞은편에서 또 하나의 권총을 들고 저격하고 있는 남자는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모런이라 불린 남자, 저격수는 곧 앞뒤의 압박에 못 이겨 자신의 주머니에서 손을 떼냈다. 곧이어 뒤의 남자가 자신의 주머니에서 브라우닝을 꺼내 장전해제하고 바닥에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앉으시지. 많이 피곤하실 텐데.” 남자는 고갯짓으로 영국 국기무늬의 소파를 가리켰다. 모런은 별다른 저항 없이 – 그러나 표정은 낭패가 되어 –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총을 든 남자가 뒤에서 나타났을 때 모런은 예상했던 대로의 남자를 마주했다. 언제나처럼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런은 의자에 앉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다 시선을 먼 곳으로 던져버렸다.
“셜록홈즈. 그리고 존 왓슨 박사…”
“통성명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여전히 총을 든 채 존이 중얼거렸다. 서있는 존을 지나쳐 셜록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럼, 물어볼 차례가 되지 않았나? 궁금하다면 충분히 말해 줄 용의가 있지.”
“난 당신이 내가 추락할 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저격수라는 걸 알고 있어. 적어도 그 이전에 우리의 하숙집에 카메라를 설치한 장본인이란 것도. 설치기사 치고는 좀 더 ‘저격수’ 같았 달까…그러니까, 그, 뭐라고 하지?” 셜록이 순간 존을 바라보았다.
“엄지 손가락.”
“그래. 엄지 손가락. 방아쇠를 자주 당기다 보면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의 중간에 탄환 자국이 많이 남게 되고 결국에는 그 자국이 얼룩으로 남게 되지. 그 뿐만이 아니야, 당신은 그 사이에도 어떤 일을 맡았는지는 모르지만 손가락 끝에 유난히 검은 자국이 많았어. 금방 일을 치르고 왔다는 의미지. 아마 그게 당신으로서는 이 근처의 킬러들을 처치하는 일이었겠지만…훌륭하더군, 실력이.”
“문제는 그 이후인데…나는 결국 내가 떠나면서까지 두게 된 것이 바로 그 CCTV라는 걸 알게 되었어. 그리고 그 장소로 가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시간이 걸렸지.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 누군가가 언젠가는 이 CCTV를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 당신의 실력 탓에 거미 한 마리를 죽인다 해도 남은 뭔가가 있을 것 같은 찝찝함이 감돌더군. 그래서…”
“어떻게 안 거지?”
“뭐가?” 열정적으로 하던 일을 방해 받은 셜록이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저격 시점 말이야.”
“그건 쉬워.” 그는 자신의 옆에 있는 영상을 가리켰다. “반복 재생. 그리고 당신의 그 리모콘이 큰 역할을 했지.”
“잡아 낸 건가…”
“당신이 워낙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기에, 우리가 덕을 좀 보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만한 타이밍을 맞추긴 힘들었을 거야. 더구나 베테랑인 당신이, 그 타이밍의 차이를 그냥 두고 갈까? 물론, 궁금해서 여기 들어와도 어차피 당신은 잡히게 마련이지만.”
“결국은 내 발에 내가 넘어졌군.”
“현대 과학의 사랑스러운 점이지. 자, 그럼 존. 계속해서 감시하도록 해. 문제는 저 친구가 총을 다뤄선 안 된다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친구. 이제 1분 정도만 있으면 익숙한 얼굴들이 들이닥칠 테니.”
셜록은 그렇게 말하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모런은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순간의 쾌감이 짙은 절망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꺾고 싶은 필생의 적. 그는 그것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저 앉아만 있을 때, 문득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존은 여전히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고, 셜록은 자신의 통화를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얼마 후면 자신이 겪을 일이 뻔했다. 감옥에 가는 것은 두렵지 않다.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순간 자신의 앞에 다다라 있는 문제가 너무도 선명하다. 그는 순간 자신이 이전 죽음을 겪었던 주인과 동일시되는 것을 느꼈다. 가혹하며 그만큼 분명한 미래가 보이는 순간, 인간은 꿈을 잃는다. 그리고 인간은 일상을 포기한다. 삶을 포기한다. 그것은 삶을 걸면서까지 꺾고 싶은 것이 아니라, 패배감으로 일그러진 자기 자신의 모습일 뿐이다. 문득 창문 앞으로 모런은 자신의 얼굴을 마주했다.
모리아티는 셜록을 통해 자신을 보았던 것일까.
문득 그는 시선을 멀리 던졌다. 창문 너머에는 여러 건물이 있다. 그리고 그 건물에는 창문이 있다. 창문 중 하나에는 절묘한 하나의 총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귀신처럼 타겟을 노린다. 총구 뒤에 사람은 없다. 그것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문득 왼편 주머니에 있는 리모콘이 떠올랐다.
그는 그리 많은 탄환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요컨대 그는 그만큼으로 일을 치룰 수 있을 만큼 수완이 좋았다.
그의 주인이 중얼거렸던 말이 떠올랐다. 이전의 별 것도 아닌 것들을 위해서든 무엇을 위해서든 그 다음의 계획이 존재하는 법이라고…그는 문득 너무도 오랜만에 미소 지었다.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들은 더 이상 리모콘의 작동상태를 확인하지 않을 터였다. 그 일은 너무 쉬웠다. 남자는 한 순간에 이마 정 가운데에 저격을 맞고 쓰러졌다. 자신이 보았던 주인의 그것 만큼이나 커다랗고 공허하게 뚫린 뒤통수가 처참했다. 존은 순간적으로 그를 안아 올렸고 셜록은 자신의 옆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떼내었다. 남자는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결국 아무도 저격하지 못한 채 남자는 자살했다. 어찌 보자면 너무도 타당하다. 그 누구도 남자를 죽일 수 없었다. 그 자신 외에는.
‘셜록, 셜록?!’
“잠시만요…” 셜록은 존을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죽은 것이 확실했지만 그는 다시금 확인하고 싶은 듯 존을 바라보았다. 존은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죽었습니다. 방금 전에, 자살 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서 이곳으로 와 주십시오…자살입니다.”
셜록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스러진 남자의 뒤로 장착 해제된 브라우닝만이 노을녘의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 FIN.
'TEXT > Sherlock' 카테고리의 다른 글
REDHOOD00 (1) | 2014.05.05 |
---|---|
untitled[장편/미완] (0) | 2014.02.09 |
[데이비드 왓슨] = ? (0) | 2011.09.28 |
[만남] (0) | 2011.08.28 |
[Peony] (0) | 2011.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