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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4.08 [ODP'V]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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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P'V] Case
이 남자의 증상에 대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너무도 난감할 따름이다. 요컨대 이 이야기는 지구상의 60억 인구도 아니고 그 60억 인구의 발치만큼을 움직일 만큼 대단한 인물이나 위인도 아니며 기껏해야 여느 도시에 집 한 채도 가지고 있지도 않을 만큼 보잘 것 없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만일 이 이야기가 할리우드의 2분기를 장식할 메인타이틀의 시나리오였다면 분명 망할 징조가 분명할 테지만 걱정 마시라. 지금부터 할 이 이야기는 그저 그 남자와 당신, 그리고 나만 알고 있을, 별 볼일 없는 이야기다.
남자의 이름은 존 왓슨. 편의상 존이라 부르기로 하자. 첫 인사에서부터 그를 '존'이라 지칭한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고 불편할 테지만 지금 존이라 부르지 못하면 혹여나 120년의 세월이 걸릴 수도 있고 또한 어찌 보자면 그렇게 부르기 위해 이미 120년을 기다려왔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니 차차 그의 이야기로 넘어가보겠다. 존은 군의관이다. 그는 얼마 전 아프간 전쟁에서 겨우 살아 돌아왔다. 존은 이따금씩 인간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취급하는 유의 행동을 저지른 결과로 지금 이 상태에 놓인 것이었는데 그는 분명 아프간 전쟁에 자원했으며 그렇게 해서 하게 될 일이나 마음에 부담으로 남게 될 짐에 대해서는 전혀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생은 이따금씩 하나의 '놀라운 선택'으로 좌우된다고 하지만 그게 존에게 이런 식으로 작용될 수는 없었다. 그건 말 그대로 '선택하기만 하면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는'부류로 아예 선택지를 집어 던져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블랙히스에서 쓰리쿼터로 통하는 사내였지만 세월이 지나서 몸이 늙을 거라는 오랜 고서의 격언도 당시 그의 귓가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존은 밤마다 총소리가 남발 대는 전장의 악몽을 견디다 못해 깨어나기도 하고, 뭐라도 큰 소리가 나면 무심코 고개를 돌렸으며, 심지어는 다치지도 않았던 다리에서 극심한 통증까지 느꼈다. 흔히들 남에게 아는 척 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하는 소리로 그는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코스를 밟고 있었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미안한 말인데 난 아직 존, 이 남자의 정확한 증상 - 그러니까 궁극적인 하나의 '문제' - 에 대해서 전혀 설명한 바가 없다. 전쟁이니, 아프간이니, 미친 사람 취급이니 심지어 약자까지 들먹여 꽤나 있어보일듯한 저 바보 같은 스크립트 속에는 결코 - 첫줄에 서술한 '증상'이라곤 나와 있지 않다. 내가 먼저 솔직히 선언하는 바이지만 나도 그렇고 당신도, 심지어 앞으로 이 글을 읽게 될 누구라도 심리학자가 될 수는 없으며 그러므로 그의 그 약자로 외상 스트레스인지, 포스트트라우매틱인지를 고쳐줄 수는 없다. - 그리고 만일 심리학자의 입장이 된다 할지라도 그들은 금전을 먼저 요구할 것이다 - 고독한 전쟁 영웅 '존'에게 있어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무미건조한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뒤틀린 생활전선의 거미줄로 가득 감싸져 있었기에 작고 골치 아픈 문제들을 마무리하느라 그의 뇌나 허파, 그 모든 장애는 사실 극심하게 간단한 키워드를 품고 있음에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아마 그 문제는 누구라도 30년 이상씩이나 걸린 후에 찾을 지모를 부류의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하다. 모래알 하나에서 세상을 볼 줄 알고 물방울 하나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볼 줄 아는 영안이 있는 인간이 있노라면 그 문제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존재가 곧 존의 곁에 도래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존은 조금 의심했다. 블랙히스의 쓰리쿼터와 전쟁속 군의관의 아둔한 감각을 모두 지니고 있을 이 사내가 '의심'이라는 말을 쓸 정도라면 여간 이상한 사내는 아니란 의미다. 존이 신경 쓰게 된 사람은 위치 자체가 그러했고 - 무려 그의 '동거인'이었으므로 - 당사자며 존도 모를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으므로 그러했다. 하지만 미리 말하건대 이 인물이 계속해서 이야기 할 '존의 증상'에 극심한 영향을 끼치며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가 존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귀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 시점에서 그가 존의 다리증상에 대해 '정신적, 혹은 심리적'이라고 결단력 있게 말한 점을 들 수도 있다. 혹은 그가 지팡이를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존을 끌어내어 런던 한복판을 질주했던 일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차적인 문제였을 뿐이고 만일 그것이 존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할지라도 엄연히 따지고 보면 그건 '그 남자'가 아닌 '그 남자의 형'이 했던 일이므로 타당치 않다.
'그 남자'. 존 다음으로 등장한 이 남자의 이름은 셜록 홈즈. 이럴 수가, 너무 익숙하고 재미있어서 순간 이 스크립트가 우스워질 정도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린 언제나 하던 대로 그를 '셜록'이라고 부르겠다. 뭐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우리가 '존 왓슨'이라는 '그 남자'를 존이라고 부르기 위해서 120년을 기다린 것처럼 이 사내를 '셜록'이라 부르기 위해 우리는 120년을 기다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셜록은 아주 괴상한 남자였다. 그는 범죄에 대해 탁월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으나 정작 그것을 소탕하는 이들과는 탁월하게 부적절했으며, 자신의 방향에 대해 굽힐 생각이 없는 사내였다. 그의 어린 시절은 그의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고기능 사회병질자(High-functioning Sociopath)'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바보같이 그가 내뱉는 - 더군다나 앤더슨에게 내뱉은 - 말을 다 믿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이미 120년 동안 겪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부드럽게 바라보자면 우린 그가 '아스퍼거(Asperger's Syndrome)'증후군에 더 가까운 사내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 그는 '아스퍼거'증후군 환자이다. 자신이 열중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끈이 너무도 없고 친구도 역시 없는, 그러나 맡은 바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범재를 뛰어넘는 놀라운 지능력을 과시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스퍼거 신드롬에 대해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남의 감정을 손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조사하거나 연구하는 바만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길 좋아하지 남의 이야기나 사연을 들어주길 기대하기는 힘든 성품 케이스이다.
헌데 어째서 그가 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실마리이자 키워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인가? 아마도 독자 여러분들은 이런 의문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남자, 셜록은 그에게 어떠한 '증상'을 일으키는 촉매역할을 했을 뿐이지 그가 어떤 감정을 지니도록 지시하거나 그 스스로 그런 감정을 지니진 않았다. 우린 이 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몇몇은 이미 눈치가 빠른 나머지 '설마'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글쎄, 독심술사가 아닌 이상 그 모두를 정확히 맞추기는 매우 힘들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마도 당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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