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PERSONAL/Diary 2011. 4. 24. 18:43


1.

괜찮습니다.
아마도



2.

어제 길을 가다 무심코 넘어졌습니다. 앞으로 완전히 엎어졌지요.
외국인분이 '괜찮아?'라고 물어보시며 절 일으켜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망신인줄 몰랐어요, 너무 아파서.
사람은 그런거 생각하려면 여유 같은 게 있어야 하거든요.



3.

여하간에 길을 걸어서 시장에 도착한 후에,
장을 보다 짬이 남아서 노래를 좀 들을까 하고 엠피를 꺼냈는데
이럴수가,

어쩌면 그 외국인분은 영안이 있으셔서 제 엠피에 대고 '괜찮아?'라고 한 건지도 모르니까요.
너마저...



4.

제 삶의 낙이 무참하게 부서진 액정으로 절 바라보는 동안
저는 피흘리며 죽어가는 전우를 붙잡은 심정으로 전원 키를 지긋이 눌러보았습니다.
요컨대, 그건 단지 힘없이 전우의 가슴팍을 힘껏 눌러보는 것과 같은 거죠.

비직, 비지직 - 
엠피녀석이 기어코 눈을 뜨려고 퍼덕이며 제딴에는 평소처럼 hello라고 하고 싶었겠지만
제가 보기엔 그저 쪼개진 비트선들 사이로 피와 같은 보랏빛 선들이 비참하게 늘어설 뿐이었습니다.

울먹 - 울먹 -

엠피가 그러는 것 같더군요. 터치인 녀석의 몸을 혹시 몰라서 눌러보니
눈물자욱처럼 퍼져가는 보랏빛.
이럴수가,
녀석은 그렇게 예고도 없이 절 떠나갔던 겁니다.


5.

집에 와서 혹시 몰라 USB연결을 시도해 보니까
녀석의 넋이 남았던 것인지 기적처럼 연결이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음악이며 텍스트 파일등을 부랴부랴 옮기고

지금 엠피녀석은 널부러져 있습니다.


6.

아무래도 운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날은 일찍 잠에 들어야지요.
그래야 내일이 일찍 오니까요.



7.

친척아이가 살을 뺐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만난 것도 겨우 두 달 정도 전인데 55키로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매번 실패하는 저에겐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산길을 걸으며 그 이야기를 듣는데
스러진 나무에 스치는 바람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오열하는 것 처럼 들려 씁쓸합니다.

남자친구 이야길 물어보시길래 화가나서 앞서 걸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사람이란 게 항상 유치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거랍니다.

없는걸 어째요.
할 이야기가 없는데요.




8.

그리고 나서 왜 저에게
초코바를 주시나요.




9.

마음에 들지 않았던 벽지에 새 벽지를 바르는 대신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참고하며 그리려고 뽑아놓은 종이를 벽에 붙이려고 들어가보니
산을 타다 피곤해지신 아버지께서 누워계셨습니다.

분홍빛 방에 아버지가 계시니 뭔가 오묘하네요.




10.

새 엠피를 찾아야 합니다.
이전에 산 것이 꽤나 기능이 좋아서

고민은 많이 되지만
없으면 죽을 것 같거든요.

없는걸 어째요.

돈 많이 쓴다 하지 마세요.
저에겐 이것 밖에 없어요.




11.

남자친구도

많은 친구도

젊음으로 비롯되는 그 다양하고 알록달록한 풍선들

저에겐 없어요.

제가 노래를 듣고

그것들을 차단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가 제 목소리를 녹음해서

제 곁에 누군가 있는 것 처럼 흉내낼 수 있게 해주세요.

미안하지만 이젠 이것 뿐입니다.
저에겐 그것 뿐이거든요.

옷도, 머리 문제도 아닌
제 얼굴의 문제이니까요.

매력이
없는걸 어째요?
할 이야기도 없는데요.



벽지를 분홍빛으로 바를 때
제가 아름다워질거라 기도했던 것 처럼요.
그건 '바람'이죠
전 그 바람에 스쳐 우는 넘어진 나무이고요.


전 분홍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그림을 그립니다.
운수 없는 날에도 새 옷을 걸칠 생각 없이
나는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배는 고프고 나는 살이 쪘지만
밥을 먹으러 가잡니다.
먹지 않으면 어쩔까요.

아까 그 초코바,

딱 그만큼만 서러우면 좋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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