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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러스 시리즈_1.Sherlock's Case(1)
Sherlock's Case
1.
"셜록 홈즈..."
"제발...그만 하세요. 그 이름만큼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군요."
긴 손가락이 늘어진 앞머리 사이로 파고들어 눈동자며 얼굴을 가득 가렸다. 머리 스타일만 봐서는 여자일거라고 여기겠지만 사실 그는 남자였고,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요소라면 비단 그가 입고 있는 셔츠나 바지, 구두 따위가 아니어도 유난히 큰 키나 마른 몸에 큰 골격을 봐서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그가 '남자'라는 것만 인지하더라도 그렇게 흐느끼듯 얼굴을 가리며 이전부터 유명했던 한 캐릭터 이름을 외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이전에 인지한 키워드와는 매우 상이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매번 TV에서만 보다가...신기해서요." 키가 깡마른 '셜록 홈즈'와 그의 주변을 에워싼 사람들은 대부분 드라마 제작을 위해 모여든 핵심 인물들이었다. 와중에는 연출자, 각본가도 있었지만 의상팀이며, 스텝...마치 어린시절 반에서 한 아이가 울자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모여든 아이들처럼 눈만 휘둥그레해져서 서 있었다. 어깨에 손이라도 얹어줄만한 분위기였지만 앉아서 흐느끼는 셜록에게 그런 일은 그리 좋은 결과를 주지 못할 터였다. 그도 그럴것이, 현재 거금을 들인 드라마라도 한 걸음조차 나서지 못하게 할 만큼 치명적인 '무언가'가 셜록 홈즈의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선물용 상자였는데, 우습게도 열려있지 않고 닫혀있었다. 의아해서 물어보자 '너무 흉측해서 제가 닫아놓으라고 지시했습니다'라고 연출자인 듯 보이는 사람이 말하였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상자를 무심코 열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 그지 없는데, 어찌 되었든 이렇게 후회하는 것은 당시 내가 스스럼 없이 그 상자를 열었다는 의미이고 또 한 가지는 결코 그 사실이 내 평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거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덧없는 연출에 불과했다. 조금 옅은 갈색 머리칼 한 뭉치와 커터칼 조각들, 그리고 누구의 것인지 모르지만 당연히 사람이라면 인지적으로 머리카락의 주인이 그 소유자일거라 짐작되는 검지 손가락의 한 마디와 오른쪽 귓볼, 그리고 전체적으로 뿌려져 있는 혈흔이 겨우 소형 액자 하나가 들어갈 만한 상자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단순한 상자 포장과는 다르게 그렇게나 끔찍한 물건들이 꽃이나 에워쌀법한 부드러운 포장지 위에 살포시 얹혀있는 모습은 과히 가관이었는데, 피로 물든 물품 위로 천사의 깃털같이 하얗고 빳빳하게 올려진 메모지는 오히려 그 거부감과 혐오감을 더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너무 멍청하고, 너의 조수는 너의 발치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부족하지.
왜 너와 같은 천재를 주변에 얼룩지도록 두는 거지?
내가 널 구원해줄게. 난 너에게 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어.
- 세상 최고의 유일한 자문 탐정에게
"재미있네."
순간 등 뒤로 다가온 누군가의 음성에 슬쩍 놀라서 쳐다봤더니, 알지도 못하는 한 남자였다. 나는 흠칫 놀라서 뒤로 물러섰고 남들과는 다른 감상평을 내두른 남자는 큰 키를 구부려 나보다 더 가까이 상자를 바라보더니 '흥미로운데'라고 다시금 한 마디 감상을 덧붙였다.
"당신은 누굽니까?"
"아, 저쪽이 불러서. 그러고보니..." 남자는 순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기에 나도 와중에 그를 관찰하게 되었는데 남들보다 키는 큰 편이었고 - 평균 남자의 키를 훨씬 웃돌았다 - 마르지는 않았지만 호리호리한 체격이었으며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묘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평범한 런던 남성일테지만 어디선가 이지적인 면모가 흘렀고, 그의 앞서 내뱉은 말때문인지 상당히 유머러스하게 생겼다는 느낌도 풍겼다. 와중에 남자는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견습? 아니면 예비?"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명찰 말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녹색 라벨이었던 것 같은데...잊어버렸어요. 중요치 않아서."
"견습...입니다. 형사분은 조금 있다 도착하시겠지만...대체 누구십니까?"
"아마도 벤슨이겠지요? 흔하고 만만하지만 중요하니까요. 꼭 한 쪽 신장같은 분이죠. 없어도 되지만 쓸모는 있는."
"누구신데 벤슨 형사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겁니까?" 재차 물었지만 그는 목에 매고 온 목도리를 풀어 옆 테이블에 익숙하게 내려 놓았다. "만일 내가 당신이라면 주변 사람들을 옆 자리로 비키게 하고 이 장소부터 조사할겁니다. 지금은 사람보다 증거물이 더 좋은 역할을 할 때이니까요."
"그건 형사님이 하시는 일이지 제가 하는 일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읽던 범죄소설과 현실의 괴리에서 주저앉아있군요. 아닌가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묻고 있던 차에 저 멀리서 벤슨 형사가 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깡마르고 매우 키가 작았으며 언제나 하던대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한 번도 그가 그렇게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너무 빠르군. 뭐 항상 빠르긴 했지만 말이야."
벤슨 형사의 손에 악수를 하며 낯선 남자가 짖궃게 웃었다. "저야 뭐 할 일이 있어야 말이죠."
"형사님, 이자를 아십니까?"
"아, 자네는 견습이라 모를수도 있겠지. 이 친구 이름은 '콜러스'이고 런던대학 심리학과 학생이라네."
"학생이라니요?"
"아, 실은 얼마 전에 일을 맡게 되어서요. '조교수'라고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언제 그렇게 된거지? 뭐, 여하튼간에 먼저 온 상황으로 본 자네 의견을 말해보게나."
"흐음..." 콜러스란 이름의 사내는 검은 머리칼 사이로 푸른 눈을 빛냈다. 안경은 빛을 받아서 반사를 해댔기 때문에 금새 그 눈동자는 사라진 것 같아 이인감마저 들었지만 분명 그의 입술은 느긋이 미소짓고 있었고 순간 내게는 그가 이 짓을 저지른 장본인같은 느낌을 주었다. 콜러스는 손가락에 턱을 괴며 약 몇초간 주변을 바라보더니 울고 있는 셜록을 바라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친 셜로키언...이라기 보다는 예의를 차려서 '팬덤세계의 어둠의 신사'정도로 해두죠. 유치하죠? 뭐 유치하긴 하지만 이녀석은 아마 왓슨을 미친듯이 증오하는 모양입니다. 아, 셜록홈즈가 너무 좋아! 셜록은 왜이리 잘 생긴걸까?! 왓슨은 왜 붙어있는거야? 성가시게...정도?"
과도한 연기력을 펼치며 그 큰 키의 장난스레 생긴 사내가 허우적대자, 주변 사람들이며 나도 매우 당황해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는 이내 경직된 얼굴로 앉아 있는 셜록 역의 배우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마치 신문을 바라보는 노인들처럼 쓰고 있던 안경을 아래로 슬쩍 내려 바라보았다.
"남자, 아니면 여자일수도 있겠는데요. 워낙 매력적으로 어필하다보니...그렇죠?"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지 말고 본론을 말해봐. 이렇게 가다간 드라마 촬영이 늦어지는 건 시간문제야." 벤슨 형사가 재촉하자, 안경을 끼고 능청을 떨던 그 얼굴은 재치스런 표정을 버린 채 옆으로 비죽 웃어보였다.
"블로그 아십니까?"
"무슨 블로그 말인가?"
"이분 블로그 말이에요. 아니, 정확히는 이 분의 그 몹쓸 '보조꾼'의 블로그이겠지요. 모두에게 문자를 보낼 줄 아는 탐정은 블로그같은 건 만들지 않을테니까...거기서 익명(anonymous)이라는 놈의 말하고 상당히 비슷한 맥락이죠."
"아, 그거 혹시..." 연출자가 다시금 나섰다. "존의 블로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죠." 다시금 안경 사이로 눈빛을 빛내며 콜러스가 말하였다. "저런 멍청이라니, 당치도 않아. 나라면 더 잘 할텐데...이런 내용이죠."
"그럼 이 상자를 보낸 녀석은 셜록의 스토커라는건가?"
"뭐,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타겟은 한 명이 아니라 둘이에요. 우정인지 사랑인지 몰라도 자신의 애정을 모두 쏟아부을 정도의 '대상'과 그들의 열렬한 사랑을 방해하는 '방해꾼'. 재미있는 드라마라도 찍는 모양이죠."
"셜록 홈즈의 스토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콜러스는 순간 나를 바라보다 씨익 웃었다.
"이거 *베이커가 특공대를 다시 소집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요? 120년만의 소집이니 설레이기도 하겠네요. 뭐, 저도 당연히 그 사이에 끼여야 할테지만요. 오늘 드라마 촬영은 힘들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블로그를 제작하고 댓글을 단 '익명'이란 사람을 찾아서 심문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아, 그리고...
콜러스는 그렇게 말하더니 셜록 홈즈 역할의 배우를 지긋이 바라보곤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그 행위에 소스라치게 놀란 듯 배우가 그를 바라보자, 콜러스는 친근하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렸다.
"드라마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컴버배치 씨."
*베이커가 특공대(Baker Street's Irregulars);영국 셜로키언의 모임으로 시작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적인 셜로키언의 군집이다. 셜록홈즈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영국인은 '셜로키언'(Sherlockian), 미국인은 '홈지언'(Holmsian)이라고 한다.
-c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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