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herlock

[Mike Stamford]

Dcoding 2011. 3. 20. 21:32




 

1. 런던 대학의 의학 박사를 취득하고 여느 학생들이 그러하듯 대학 병원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를 거쳐 과장 자리에 오르고 학생들의 '교수'역할을 하게 되다 보니 어느덧 자신은 서른 줄을 훨씬 넘긴 '아저씨'가 되어 있었고 무엇 하나 보잘 것 없는 외모에 여자 친구와 같은 외적 풍요로움은 덜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매우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웠으므로 스템포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항상 해 왔던 대로 '난 잘 해가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만난 존 왓슨을 보았을 때에 그의 신념은 더욱 굳어지기에 이르렀는데, 혈기왕성한 블랙히스의 쓰리쿼터였던 사내가 어느 정도는 야위어서 아프가니스탄의 총탄을 어깨에 스치고 난 후 공허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자 두서 없는 일은 어두운 결과를 보여주는 건가 싶어서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향에 대한 증거라도 얻은 것처럼, - 어찌 보자면 참 비열한 일이지만 - 마음 한편에서는 '역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존이 안쓰러웠지만 실상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같은 바트솔로뮤의 괴짜를 소개시켜주는 것뿐이었고 일후에 블로그 상황을 보건대 자신이 한 일은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점이 스템포드에게는 어느 정도 변화의 계기로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불과 며칠 사이에 존은 많이 변해 있었다. 블로그는 고사하고 웹 생활이란 것에 익숙한가 싶을 정도로 무뚝뚝한 친구가 능숙하게 자판을 두들겨서 블로그에 이런 저런 사건에 대한 감상을 올리는 걸 보아선 아마도 매우 위험하면서도 만족스런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오래 전부터는 항상 먼 곳에서 기껏해야 손을 흔드는 정도의 '대학동기'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마치 마주선 존의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본 것만 같았고 괴짜인 셜록과 어울리는 것이 한없이 신기하면서도 사람의 인연이나 운명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생각에 작은 웃음이 일기도 했다. 그의 생각 속에 존은 언제나 석상처럼 무뚝뚝했고 셜록은 항상 봐왔던 대로 자신의 일만 하며 남을 생각하지 않는 괴짜였지만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던 자연 현상의 실험 결과가 정 반대인 것을 알았을 때처럼 두 사람이 의외로 잘 맞물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희극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존의 블로그는 어떠한 흥분으로 가득 차 있기 일쑤였다. 첫 사건에서부터 간결하지 못하고 칠칠치 못하게 글을 써내려가는, 그러나 자신의 무뚝뚝한 성품이 한없이 드러나면서도 포인트를 줄 즈음에는 난데없이도 '로맨틱'이란 말을 쓸 줄 아는 이 의가사제대 군의관의 글을 보고 나면 저 멀리서 온통 빈 강의실 사이로 홀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비추는 것 같았다. 슬며시 바람은 일었고 아마도 존보다 몇 배는 무거울 자신의 몸을 일으키면 바람에 몸뚱이 감각이 더 살아나고, 그래서 스템포드는 잠시 창가를 바라보았다. 햇살이 비추고 그날따라 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홀로 가져온 노트북에 존의 블로그를 띄워 둔 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도 한 마디 거들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뭔가 서글퍼진다. 그는 서서히 다가가서 창문을 닫았다. 바람이 그의 허리선이나 목선을 휘감고 돌며 그의 몸매를 조롱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창문을 닫는다고 해서 그가 더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수없이 런던의 한복판을 질주했다.'


만일 그의 수입이 일정치 못하며 어쩌다 미친 생각으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갔다 왔을지라도, 그리고 혹여나 마땅히 런던에 집이 없어 지금과 같은 주택이 아닌 저렴한 호텔에 산다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형편을 넌지시 비출지라도, M.스템포드는 결코, 런던의 한복판을 질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 앞으로 남은 삶에 있어서 과연 런던의 한복판을, 그것도 무슨 분명한 목적이나 뜻이 있어서 질주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며 아주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창문이 아닌 그의 내면에서 한없이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유치하지만 뜻도 없는 서글픔이 둔덕한 볼살과 코끝을 잠식해왔다. 성품, 인격, 생활, 경력, 전쟁...모든 것을 합쳐도 그는 괴짜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뛰도록 하지는 못할 것이다.


마치 그 거리를 뛰다 숨이 차오르듯 스템포드는 호흡이 빨라졌다. 잠깐, 잠깐만 쉬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면 그 키 크고 성마른 괴짜 사내는 '자네는 너무 살이 많군. 따라오지 못하면 날 도와줄 수 없어.'라며 자신의 시야 밖으로 금세 멀리 멀리 사라진다. 그러고 나면 특유의 힘없고 어깨가 빠진 둔탁한 뒤태로 스템포드는 걸어가는 것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한없이 어린 애 같은 모험을 할 수는 없을 테지.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단순히 '런던 한복판을 질주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마저 밀려오는 기분이다. 대체적으로 주변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왔지만 학문적 뜻 외에 그 어떤 사회적 기능도 하지 않는 차가운 학생들과 건조한 강의실, 그리고 외딴곳에 있으면서도 쓸데없이 넓은 집이 전부인 그에게 이미 이러한 서글픔은 유치함을 동반하기엔 너무도 지독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제 텅 빈 강의실의 문을 닫고 자신의 노트북을 옆에 맨 채 항상 하던 대로 온통 지친 몸뚱이를 이끌고 무겁고 무겁게 텅 빈 강의실 복도를 걸어 나가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