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시오! 그리시오!_연성러는 왜 탁월한가.
나는 팬걸들을 사랑한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 나는 글러와 그림러들을 사랑한다.
물론 이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많은 독자분들이야말로 이 콘텐츠의 하트 뿅뿅이지만 이번엔 글러와 그림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대체적으로 팬걸이라 하면 - 동인녀? 아니면 여자 오덕? - 이라고 생각하는데...일단 나는 오덕에 대해 나쁘게 보지 않는다.
물론 오덕이란 것이 이미지상으로 '안여돼'가 되어버렸다거나 여성의 상품화 문제가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 일부의 이미지 중심 어택을 제외하고 - 내용에 대한 이해와 분석력, 통찰력이 요구되는 분야가 바로 덕질이다.
에반게리온을 보라. 덕후들이 지은, 그야말로 '지식의 상아탑'이다. 거대한 세계관, 허무감, 그저 보고나면 별 거 아닐 수도 있을 '애니'가
사실 품고있는 여러 플롯과 그에 넘치는 장치들, 그리고 등장인물들과의 화학작용까지...결말에 대한 분석, 식견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정수는 제 2차 창작, 즉 글러와 그림러에게서 발견된다.
먼저 그림러의 이야기를 하자면 -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둘째 치고 - 그림에서도 분명히 캐릭터의 성품과 직업등등의 프로파일이 나온다.
자세, 얼굴, 스타일, 배경 분위기 등등...흔히들 그림은 그냥 슥슥 그리는 거라 생각하지만 분명 오산이다. 그림은 각 작품이 하나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강하게 함축적인 이미지이다. 또한 이것에 더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옛 그림들이 지닌 알레고리를 충분히 묘사해낼 수 있다.
각 배경안에 자리잡은 인물의 크기와 그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물건, 인물의 성품을 반영하는 표정, 의상까지...이러한 묘사는 작품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통찰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즉, 해당 콘텐츠에 대해 시나리오 및 캐릭터를 관통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글러는 어떠한가? 그림러들이 이미지로 시를 쓴다면 글러들은 자신들이 가진 생각을 기존 콘텐츠에 융합하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 댓글에서 흔히 보여지는 '정말로 있을 것 같은' - 즉, 개연성은 이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글러들에게 있어 제 2차 창작의 가장 중요한 점은 내용의 확장성이다. 특정 에피소드가 있고 그 에피소드에 대해 독자나 시청자로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그에 따르는 상상력을 펼쳐놓고 개연성 있게 풀어나가는 것이야말로 글러들이 만들어내는 주요 역할이다.
그보다 더 나아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각 에피소드 사이 사이에 교묘히 들어가도 전혀 손색없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글러들이 지닌 탁월한 감각이라 할 수 있겠다.
글러들이 각 캐릭터의 대화를 단순히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도 구분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또한 훌륭하다.
같은 '안돼'를 말하여도 '안됩니다' 혹은 '안돼요' 혹은 '오, 안돼요' 혹은 '돼요'라고 말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간파해야지만
대화만 하여도 누가 이 말을 내뱉었는지 알게끔 하는 팬픽션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러한 연성러들은 콘텐츠 확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팬걸에 대한 다소 가벼운 인식보다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에 대한 열정과 이해, 그리고 높은 식견에 대해
존중해보는 것 또한 좋지 않을까...생각하여 한밤에 이곳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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